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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

동유럽(3)

3일째 날

어제 예정시간보다 늦게 호텔로 들어왔다고 오늘은 15분 늦게 출발하여 09:45 호텔을 출발하였다. 이규정을 지키지 않고 운행하면 어제처럼 경찰단속에 걸리면 범칙금을 내야 된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안전운전을 위해 차량뿐만 아니라 운전자까지 보호를 위해 철저한 규정을 지켜야 된다는 것이다. 어제저녁에 시내를 대충 야경으로 봤지만 오늘은 낮에 또 보기위해 이동하였다.

프라하역(驛)에서 남쪽으로 500m 지점에 무스테크 광장을 지나면 오른쪽에 1757년에 러시아군에게 포위될 당시 화약고로 사용하면서부터 화약탑으로 이름 붙여졌다는 화약탑이 있다. 화약탑과 나란히 있는 길이 신시가지, 탑을 지나 서쪽 길이 구시가지가 각각 시작되는 곳이다.

화약탑

화약탑을 관광한 뒤 우리일행은 400년 전 큰 일이 있었다는 야곱성당을 찾았다. 이 성당에 값진 물건이 있다는 소문에 도둑이 들어 금고문을 열다가 팔둑이 잘려 지금까지 매달아 놨다는 이 성당에 도둑의 팔을 보고 400년 전에 대단한 일을 생각해봤다.

 

 

 

 

 

 

 

 

 

 

 

 

 

야곱성당의 도둑의 팔

야곱성당을 뒤로하고 구시가지 광장으로 향했다.

구시가지 광장은 10세기 이래 늘 프라하의 심장부와 같았던 곳으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각종 건축양식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특히 낮과 밤 가릴 것 없이 계속되는 활기찬 분위기와 프라하 역사에 길이 남을 주요사건들의 발생지로써 더욱 잘 알려져 있다. 1422년에 행해진 성직자 Zelivsky의 처형장소 이자 1918년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 등을 벌인 애환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집들에 반쯤 가려 광장 쪽을 바라보고 있는 건물이 구시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틴교회이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자랑하고 있는 건물은 구 시청사이다.

1388년 시민권을 허가하기 위해 세운 후 1410년 시계탑이 세워졌다. 원래는 상당히 큰 건물이었으나 제2차 대전 당시 나치의 폭격을 받아 부속 예배당과 북쪽 건물의 상당부분이 불에 타고 말았다. 그 후 남은 부분을 복구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높이가 70m에 이르는 탑이 유명하다. 그러나 탑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남쪽에 설치된 천문시계이다. 프라하의 명물 천문시계(ORLOJ)는 15세기 프라하 대학의 수학교수였던 하누슈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기발하고도 아름다운 시계에 대한 소문이 유럽 각 국으로 퍼지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주문이 쇄도하였다. 그러자 이 시계를 독점하고 싶은 프라하 시청에서는 하누슈 교수가 두 번 다시 시계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천문시계

그 후 자신이 만든 시계를 만져보기 위해 시계탑 위에 올라가 시계에 손을 댔을 때 시계 바늘은 그대로 멈추어 400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1860년 수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410년에 제작된 시계탑의 천문시계는 위아래 두 개의 원으로 천동설에 입각한 우주관을 보여준다. 위원은 칼렌다륨이라 하여 해와 달 전체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으로 1년에 한 바퀴를 돌며 년·월·일·시간을 나타낸다. 아래쪽에 있는 원은 플라네타륨인데 이것은 12개의 계절별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헤미안의 농경생활과 관련이 있다. 천문시계 한 가운데에는 푸른 지구가 위치해 있고, 3개의 시계 바늘 축은 지구의 중심으로서 프라하를 가리키고 있다. 3개의 시계바늘은 각기 바늘 끝에 달려있는 태양, 달, 별 모양이 암시하듯 태양 시간, 달 시간, 황도대를 각각 가리키고 있으며, 맨 외부 24 아라비아 숫자는 고대 보헤미아 시간을, 다음 안쪽 두 쌍의 12로마숫자는 중부유럽의 낮/밤 시간을, 맨 안쪽(푸른색 내)의 12 아라비아 숫자는 일출-일몰시까지의 낮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위의 푸른색은 하늘을, 밑의 갈색은 땅을 나타내며, 갈색 안의 검은 색은 여명의 시간을 나타낸다.

매시 정각 천문시계 옆에 있는 해골인형(죽음을 상징하며 시간의 유리잔을 들고 있음)이 움직이면서 종을 치면, 그 위 두 개의 창문에 열리면서 그리스도 12제자 인형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때 천문시계 왼쪽에 있는 거울을 보는 자(허영을 상징)와 돈지갑을 든 유태인 인형(부를 상징)이 같이 움직이고, 아울러 오른쪽의 터번을 슨 터키인은 음악을 연주한다. 천문시계는 '여명의 시간이 다가오면 허영과 부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매시마다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 시계는 여러 차례에 걸친 수리작업이 있었으나 아직도 대개 매시정각에 시계 바늘 윗부분에 있는 창문 2개가 열리면서 작은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12사도를 뜻하는 인형들이 차례로 얼굴을 내밀고는 사라진다. 마지막에는 시계의 가장 위쪽에 닭이 나타나서 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매시 정각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비디오를 들고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다.

청사건물 정문 위 르네상스식 창문 위에는 'Praha. Caput. Regni'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프라하, 왕국의 수도(Prague, Capital of theKingdom)'라는 의미이다.

구 시청사 바로 옆 잔디밭은 1945년까지만 해도 청사의 신 고딕양식 건물이 있던 곳이었으나,

구시가지 광장(시계탑, 틴성당, 시청사)

1945년 5월 소련군이 이곳 프라하에 입성하기 수일 전에 나치 독일군이 밀어버려 지금도 빈터로 남아있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프라하 시민에게는 결혼식장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편 천문시계가 있는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구 시청 사 내부의 역대 프라하 시장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집무실과 예배당을 견학할 수 있다.

구 시청사 맞은편, 킨스키 궁전 바로 옆에 위치한 틴 성당은 하늘을 찌를 듯 한 멋진 첨탑이 인상적이다. 1365년 세워진 이 교회는 금장식을 정점으로 하는 두 개의 탑이 높이 80m에 이른다. 화려한 외관은 초기 고딕양식을 띠고 있지만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음울한 분위기이다. 황금 성배(聖杯)를 녹여 두개의 첨탑 가운데 부착한 성모마리아상(像)이 유명합니다. 이 교회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북쪽 벽에 있는 로코코 스타일의 거대한 제단과 아름다운 동북쪽의 출입문이다. 이곳에서는 종종 클래식 콘서트가 열리며 특히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가 기막히다.

다음 관광은 어젯밤에 야경으로 관광한 카를교를 향했다. 블타바Vltava(우리에게는 몰다우Moldau로 알려져 있음)강 위에 서정과 낭만이 가득한 다리가 카를 다리(챨스 브리지

Chales Bridge)이다.

1357년 건설하기 시작하여 1406년 카를 4세에 의해 완공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생겼다. 강 서쪽의 왕성(王城)과 동쪽의 상인거주지를 잇기 위해 생긴 다리다.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현존하는 유럽 최고의 다리로 손꼽힌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이곳에는 예전에 유디타 다리(Juditin most)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었으나 1342년의 홍수로 소실된 이후 당시에 최고 수준의 기술을 동원하여 새롭게 세운 것이 카를 다리라고 한다. 길이 520m, 폭 10m의 보행자 전용으로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언제나 노점상과 거리의 예술가, 관광객들로 붐빈다.

다리의 가장 큰 특징은 조각상이 양측 난간에 15개씩 합계 30개가 늘어서 있다. 이는 로마 산탄젤로 성에 있는 베르니니의 조각에서 힌트를 얻어 1683년부터 프라하의 기독교 순교 성자인 네포무크의 조각상을 시작으로 기독교 성인 30인의 조각상(사암을 사용)을 다리 난간에 세우게 된 것이다.

턱수염을 기른 수도사의 모습은 손에는 종려나무와 십자가를 쥐고 있으며 좌대는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세청동판에는 소피아 왕비의 고해성사를 밝히지 않은 네포무크가 볼타강에 던져지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다리의 양끝에는 총 3개의 탑이 있다. 그 중 프라하 성 쪽으로 두 개의 탑이 있고, 구 시가 쪽으로 하나의 탑이 있다

네포무크 동상

프라하 성 쪽의 두 탑 중 조금 낮은 탑은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은 것이며, 키 큰 탑은 15세기의 고딕양식으로 지은 것이다. 구시가지 쪽의 탑은 14세기에 만든 것으로 유럽 고딕양식의 최고봉에 속한다. 이 탑들은 원래 통행료를 징수하거나 다리를 지키기 위하여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일행은 카를교를 지나 프라하성으로 향했다

프라하성은 길이 570m, 폭 128m인 프라하 성은 전 세계의 현존하는 중세양식의 성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정문에서는 매일 정오에 화려 한 위병 교대식이 펼쳐지기도 한다.

프라하성 내부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교대식이 끝나 조금은 아쉬웠다.

프라하 성이 현재의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14세기 카를 4세(1346~78년 재위)때의 일이다. 그는 왕궁을 재건하고 성 비토의 성당을 세우면서 프라하 성을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단장하는데 이때부터 이 성은 국가적 상징물이 되었다. 15세기 말 국왕이었던 블라디슬라프 2세 치하에서 후기 고딕 양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었고,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을 때부터 르네상스 적인 건축이 프라하 성을 점점 복잡하고 정교한 것으로 만들었다. 프라하 성의 건축 양식상 완결은 바로크시대에 이루어졌다. 1753년~1775년 사이에 외관은 현재와 같이 결정되었고, 1918년 대통령의 관저로 바뀌면서 건축가Josip Plecnik에 의해 성의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로 정비되었다.

프라하 성에 들어가시면 성내 가장 유명한 건물인 비트 성당이 있다.

이곳에는 카를교에 동상이 있는 네포무크 관이 있는 곳이다. 비트성당 내부는 각기 다른 시기에 각각 다른 작가들에 의해 완성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고 성당 남탑 전망대에도 올라 갈 수 있어 이곳에서 보는 프라하전망은 매우 아름답다.

비트성당내에 있는 네포무크 관

프라하성 관광 후 점심을 먹으면서 체코에 유명한 맥주인 ‘Pilsner’를 한잔한 후 다음 장소인 '프라하의 봄' 사건 당시 점령군과 시위대의 격돌로 100여 명이 희생당한 바츨라프 광장(신시가지)으로 이동하였다.

길이 750M, 폭 60M의 대로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 신시가지라고도 부른다.

이 대로 양쪽으로는 고급 상점과 레스토랑, 노천카페가 길게

비트성당 외부

늘어서 있어 프라하 최대의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은 체코 역사 현장으로서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혁명'의 중심지였다. 축제의 회장으로 사용되며, 역사상으로는 자주 대사건의 무대를 이루기도 했다. 광장이 시작하는 곳에는 체코인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성(聖)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있는데 여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기마상

바츨라프 광장(신시가지)

아래에는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광장 정면에는 세계 10대로 꼽히는 프라하 국립박물이 있다.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 우리일행은 구시가지로 이동하여 자유시간을 갖고 있는데 일행 중 나이 드신 여자분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 마침 프랑스인 의사분이 있어 응급처치를 할 수 있어 다행히 의식을 찾아 천만 다행이다. 1월 달에 아프리카 여행 중 사망한 분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 후 16:45 프라하를 출발하여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로 이동 19:40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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